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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 으로 문학기행 |
[뉴스노크=김인호 기자] 광양시가 12월 30일 윤동주 탄생 108주년을 앞두고 윤동주의 육필시고를 간직해 시인으로 부활시킨 광양 망덕포구의 정병욱 가옥으로 떠나는 문학기행을 추천했다.
광양은 윤동주가 생전에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지만, 일제강점기 출간이 좌절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지켜내 명실상부 시인으로 부활시킨 문학적 고향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병욱은 윤동주가 각별하게 아끼던 연희전문학교 후배로, 우리말글이 금지됐던 시대에 윤동주가 직접 써서 묶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소중히 간직해 세상에 알린 장본인이다.
정병욱이 지켜낸 시고에는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등 시대의 어둠을 비추는 별과 같은 19편의 시가 윤동주의 육필로 또박또박 담겨 있다.
정병욱은 회고록 ‘잊지 못할 윤동주 형’에서 “내 평생 해낸 일 가운데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일은 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린 일”이라고 밝혔다.
또한, 윤동주를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윤동주의 시 ‘흰 그림자’에서 따온 ‘백영(白影)’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명동학교와 평양 숭실중학교를 거쳐 서울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1941년 겨울, 졸업을 앞둔 윤동주는 그동안 써온 시 가운데 18편을 골라 ‘서시’를 붙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의 시집 원고를 3부 엮었다.
윤동주는 한 부를 직접 간직하고, 한 부는 지도교수 이양하에게, 나머지 한 부는 함께 하숙하며 각별한 정을 나눈 후배 정병욱에게 건넸다.
비록 정식 출판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윤동주는 77부를 인쇄해 지인들과 나누고자 하는 소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시대의 벽은 높았다.
윤동주는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돼 투옥됐고, 결국 차디찬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생전에 시인으로 등단하지 못한 윤동주는, 정병욱이 지켜낸 친필 유고를 바탕으로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간행되면서 비로소 시인으로 부활했다.
광양 망덕포구에 위치한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등록문화재 제341호)에는, 명주 보자기에 싼 유고를 항아리에 담아 마룻바닥 아래 보관했던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재현돼 있다.
가옥에서 포구를 따라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엔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31편 전편을 시비로 조성한 ‘윤동주 시 정원’이 조성돼 있다.
이곳에는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은 물론,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국빈 만찬에서 영어로 낭송해 화제를 모은 ‘바람이 불어’도 포함돼 방문객의 눈길을 끈다.
광양시는 망덕포구와 배알도 섬 정원을 잇는 해상보도교 명칭을 ‘별헤는다리’로 명명하고 윤동주 테마 관광상품 운영 및 여행사 인센티브 지원 등 광양과 윤동주의 관계 브랜딩에 힘쓰고 있다.
이현주 관광과장은 “윤동주의 생물학적 고향은 북간도이지만, 시인 윤동주의 문학적 고향은 그의 육필 시고를 지켜낸 대한민국 광양”이라며 “윤동주 탄생 108주년을 맞아,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추구한 윤동주의 순결한 시 정신을 기리는 역사·문학기행을 적극 추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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